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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옛 동리길 문화탐방

옛 안성기찻길

위치 강변로 155 ↔ 장기2길
(옛 안성기찻길 중 탐방지인 옛 동리지역에 해당하는 일부만을 표기함)

지금은 탐방중! 시내권 문화탐방 > 옛 안성기찻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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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시내권 문화탐방 > 옛 안성기찻길을 탐방하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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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 1919년 9월 30일 안성역↔천안역 인가
  • 1924년 원주역 연장 인가
  • 1925년 11월 1일 안성역↔천안역 개통
  • 1927년 4월 16일 안성역↔죽산역 개통
  • 1927년 9월 15일 죽산역↔장호원역 연장 인가 
  • 1944년 4월 5일 일제 선로 공출령
    *안성역↔장호원역 구간 선로 훼철·공출
  • 1946년 5월 10일 국가 소유 전환
  • 1955년 6월 14일 '안성선'으로 이름 변경
    *경부선 부속 지선 철도 개념 운행
  • 1977년 안성선 1일 2회 운행
  • 1985년 4월 1일 안성선 여객취급 중단
  • 1989년 1월 1일 안성선 전 구간 폐지

역사와 의의

  • 안성기차는 일제강점기인 1925년 안성↔천악 구간이 개통되면서 시작됐다. 당시 안성기차는 '조선경남철도 주식회사'라는 민간회사의 사철로 인가 ·운행됐으며, 1927년에는 안성↔죽산 구간이 개통됐다. 1927년에는 죽산 ↔장호원↔원주 구간의 철도도 인가됐으나 장호원에서 원주까지는 세계 2차 대전 발발로 개통되지 못했으며, 전쟁 막바지인 1944년 일제는 선로 공출령을 공포하고 안성(안성읍내역)↔장호원 구간의 모든 선로를 뜯어내 전쟁물자로 활용했다. 이때 안성읍내역도 폐쇄된다.
  • 일제강점기 안성기차 역사는 일제 수탈의 역사이자 침략 당한 민족의 아픈 역사가 함께한다. 그러나 그 속에는 안성민중의 저항정신도 담겨있으니 그 대표적인 역사가 안성읍내역 설치에 있다. 1919년 인가받은 기차 노선계획에는 지금의 석정도 한경국립대한교 인근에 ‘안성역’을 설치하는 것으로 돼있었다. 당시 안성읍내면의 중심지는 장기리 안성시장으로 안성의 민중들은 일제에 굴하지 않고 조선 3대 시장으로 불리던 안성시장을 우리 민족의 시장으로 지켜오고 있었다. 안성기략에 따르면 1924년 당시 안성시장의 상인수는 총 2,069명으로 기록돼 있는데, 이중 95%가 넘는 1,975명이 우리 민족이었으며 일본인 상인은 3%가 안되는 54명이었다. 일제는 우리 상인이 밀집한 안성시장 대신 안성역 인근의 새로운 상권 건설을 계획했으나, 안성시장 우리 상인들은 이러한 계획을 좌절시킴은 물론 장기리 안성시장 인근에 안성읍내역을 건설하게 하여 안성 읍내역이 사실상 안성 읍내 중심 기차역 역할을 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역사는 안성민중의 굴하지 않는 저항정신과 단결력을 보여주는 예이다. 광복 후 안성기차는 국가 소유로 전환되어 1955년부터 경부선 지선 철도개념으로 ‘안성선’이라는 이름으로 운행됐다.
  • 1970년 안성선의 이용객을 급락하여 1977년부터는 1일 2회만 운행하다가 1985년 여객취급이 전면 중단 된 후 1989년 안성선 전 구간 폐쇄 결정이 내려지면서 ‘안성선’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이후 안성에는 현재까지 기차가 들어오질 못하고 있으며, 경기도 지자체 중 기차가 없는 지자체는 안성이 유일하다.

연관 장소 :
옛 안성읍내역

  • 위치
    추정 1 : 장기2길 97 (현 골목식당 일대)
    추정 2 : 장기2길 85-6 일대
    * 읍내역 위치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눠지고 있어 읍내역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2곳을 모두 기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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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 1919년 9월 30일 안성역↔천안역 인가
  • 1924년 원주역 연장 인가
  • 1925년 11월 1일 안성역↔천안역 개통
  • 1927년 4월 16일 안성역↔죽산역 개통
  • 1927년 9월 15일 죽산역↔장호원역 연장 인가
  • 1944년 4월 5일 일제 선로 공출령 *안성역↔장호원역 구간 선로 훼철·공출
  • 1946년 5월 10일 국가 소유 전환
  • 1955년 6월 14일 '안성선'으로 이름 변경 *경부선 부속 지선 철도 개념 운행
  • 1977년 안성선 1일 2회 운행
  • 1985년 4월 1일 안성선 여객취급 중단
  • 1989년 1월 1일 안성선 전 구간 폐지

역사와 의의

  • 안성기차는 일제강점기인 1925년 안성↔천악 구간이 개통되면서 시작됐다.
    당시 안성기차는 '조선경남철도 주식회사'라는 민간회사의 사철로 인가 ·운행됐으며,
    1927년에는 안성↔죽산 구간이 개통됐다.
    1927년에는 죽산 ↔장호원↔원주 구간의 철도도 인가됐으나 장호원에서 원주까지는
    세계 2차 대전 발발로 개통되지 못했으며, 전쟁 막바지인 1944년 일제는 선로 공출령을
    공포하고 안성(안성읍내역)↔장호원 구간의 모든 선로를 뜯어내 전쟁물자로 활용했다.
    이때 안성읍내역도 폐쇄된다.
  • 일제강점기 안성기차 역사는 일제 수탈의 역사이자 침략 당한 민족의 아픈 역사가 함께한다. 그러나 그 속에는 안성민중의 저항정신도 담겨있으니 그 대표적인 역사가 안성읍내역 설치에 있다. 1919년 인가받은 기차 노선계획에는 지금의 석정도 한경국립대한교 인근에 ‘안성역’을 설치하는 것으로 돼있었다. 당시 안성읍내면의 중심지는 장기리 안성시장으로 안성의 민중들은 일제에 굴하지 않고 조선 3대 시장으로 불리던 안성시장을 우리 민족의 시장으로 지켜오고 있었다. 안성기략에 따르면 1924년 당시 안성시장의 상인수는 총 2,069명으로 기록돼 있는데, 이중 95%가 넘는 1,975명이 우리 민족이었으며 일본인 상인은 3%가 안되는 54명이었다. 일제는 우리 상인이 밀집한 안성시장 대신 안성역 인근의 새로운 상권 건설을 계획했으나, 안성시장 우리 상인들은 이러한 계획을 좌절시킴은 물론 장기리 안성시장 인근에 안성읍내역을 건설하게 하여 안성 읍내역이 사실상 안성 읍내 중심 기차역 역할을 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역사는 안성민중의 굴하지 않는 저항정신과 단결력을 보여주는 예이다. 광복 후 안성기차는 국가 소유로 전환되어 1955년부터 경부선 지선 철도개념으로 ‘안성선’이라는 이름으로 운행됐다.
  • 1970년 안성선의 이용객을 급락하여 1977년부터는 1일 2회만 운행하다가 1985년 여객취급이 전면 중단 된 후 1989년 안성선 전 구간 폐쇄 결정이 내려지면서 ‘안성선’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이후 안성에는 현재까지 기차가 들어오질 못하고 있으며, 경기도 지자체 중 기차가 없는 지자체는 안성이 유일하다.

연관 장소 : 옛 안성읍내역

  • 위치
    추정 1 : 장기2길 97 (현 골목식당 일대)
    추정 2 : 장기2길 85-6 일대
     * 읍내역 위치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눠지고 있어 읍내역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2곳을 모두 기록함

역사 속
'이 달의 안성'

안성복음회 주최 교회 간 친목 모임 | 김태영이라는 인물이 1920년 9월, 동양선교회 안성복음회가 주최한 교회 간 친목 모임을 주선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친목이 아닌, 민족 교육에 기반한 근대 계몽 운동의 일환이었다고 해요. 당시 안성에서는 청년야학회 설립, 문맹 퇴치 운동, 운동회 개최 등 다양한 형태의 교육 · 사회운동이 활발히 전개 중이었고, 김태영의 노력은 이를 촉진하는 핵심적 역할을 했습니다.


역사와 추억이 살아있는

안성문화탐방플랫폼

안성문화원 17596) 경기도 안성시 강변남로 36
(안성문화복지센터 3층)

대표 및 문의전화 031-673-2625
팩스 0504-027-2625 • 메일 cc456as@daum.net

고유번호 125-82-02676 • 법인등록번호 134621-000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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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이 달의 안성'

안성복음회 주최 교회 간 친목 모임 | 김태영이라는 인물이 1920년 9월, 동양선교회 안성복음회가 주최한 교회 간 친목 모임을 주선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친목이 아닌, 민족 교육에 기반한 근대 계몽 운동의 일환이었다고 해요. 당시 안성에서는 청년야학회 설립, 문맹 퇴치 운동, 운동회 개최 등 다양한 형태의 교육 · 사회운동이 활발히 전개 중이었고, 김태영의 노력은 이를 촉진하는 핵심적 역할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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