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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안성관아길 탐방

옛 안성경찰서터

위치 장기로91번길 6 일대

지금은 탐방중! 시내권 문화탐방 > 옛 안성경찰서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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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시내권 문화탐방 > 옛 안성경찰서터를 탐방하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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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의의

일제강점기 안성경찰서가 있었던 곳으로
관련 연혁은 아래와 같다.

  • 1906. 11 수원경찰서 관할 안성순사주재소 설치
    • (일본인 순사 2명, 한국인 순사 4명 배치) 
  • 1909. 11. 01. 안성경찰서 창설, 죽산·양성 순사주재소 설치
    • 안성: 일본인 경부 1명, 순사 6명, 한인 순사 8명
    • 죽산: 일본인 순사 1명, 한인 순사 4명
    • 양성: 일본인 순사 1명, 한인 순사 3명
  • 1910. 06. 25. 한국 경찰권 일본 정부에 위임
  • 1910. 07. 01. 일본 통감부 소속 안성경찰서(죽산주재소 철폐)
  • 1911. 10. 30. 금광, 양지 주재소 설치
  • 1912. 06. 01. 서운 주재소 설치
  • 1912. 12. 28. 일본경찰서 청사 장기리 신축 이전
  • 1914. 03. 01. 죽산·주천 주재소 설치
  • 1919. 08. 20. 관제 일대 개혁(헌병경찰제도 폐지)
  • 1920. 03. 29. 외가천 주재소 설치
  • 1922. 10. 28. 용두 주재소 설치
  • 1923. 02. 06. 가사 주재소 설치
  • 1924. 11. 29. 주천·가사 주재소 폐지
  • 1925년 기부금 약 7,000원 모금하여 본서 구내에 연무관 신축

1925년 3월말 경찰관서 직원 현황

  • 경찰서 1개소, 주재소 8개소, 경부 1명, 경부서 2명, 순사부장 8명, 순사 47명
    • 소방조(의용소방대) : 일본인 16명, 조선인 33명

안성4·1독립항쟁사

  • 1919년 3월 11일 안성시장 상인들의 독립항쟁 이후 일제의 경계 강화 및 탄압으로 산발적으로 진행되던 안성시내권 4·1독립항쟁은 1919년 3월 30일 기점으로 대규모 항쟁으로 발전하게 된다.
  • 3월 30일 읍내면 장기리 안성 시장 부근에서 3백여 명의 주민이 독립만세를 외치기 시작했고 이 소식을 들은 읍내면 일대 주민들이 합세하면서 독립항쟁 참여 주민 수는 1천여 명에 달하게 된다. 이들은 당시 일제침략기구로 주민을 탄압하던 안성경찰서로 몰려가 돌을 던지며 실력독립항쟁을 이어갔으며 읍내면사무소를 파괴하고 안성군청으로 이동하여 심야까지 독립만세를 외치고 당시 안성군수에게 독립만세를 부를 것을 요구했다. 총칼로 무장한 안성경찰서에 투석하고 공격했다는 것은 당시 읍내지역 실력 독립항쟁이 얼마나 규모 있고 치열하게 전개됐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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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의의

일제강점기 안성경찰서가 있었던 곳으로
관련 연혁은 아래와 같다.

  • 1906. 11 수원경찰서 관할 안성순사주재소 설치 
    • (일본인 순사 2명, 한국인 순사 4명 배치) 
  • 1909. 11. 01. 안성경찰서 창설, 죽산·양성 순사주재소 설치
    • 안성: 일본인 경부 1명, 순사 6명, 한인 순사 8명
    • 죽산: 일본인 순사 1명, 한인 순사 4명
    • 양성: 일본인 순사 1명, 한인 순사 3명 
  • 1910. 06. 25. 한국 경찰권 일본 정부에 위임 
  • 1910. 07. 01. 일본 통감부 소속 안성경찰서(죽산주재소 철폐)
  • 1911. 10. 30. 금광, 양지 주재소 설치
  • 1912. 06. 01. 서운 주재소 설치
  • 1912. 12. 28. 일본경찰서 청사 장기리 신축 이전
  • 1914. 03. 01. 죽산·주천 주재소 설치
  • 1919. 08. 20. 관제 일대 개혁(헌병경찰제도 폐지)
  • 1920. 03. 29. 외가천 주재소 설치
  • 1922. 10. 28. 용두 주재소 설치
  • 1923. 02. 06. 가사 주재소 설치
  • 1924. 11. 29. 주천·가사 주재소 폐지
  • 1906. 11 수원경찰서 관할 안성순사주재소 설치 
  • 1925년 기부금 약 7,000원 모금하여 본서 구내에 연무관 신축

1925년 3월말 경찰관서 직원 현황

  • 경찰서 1개소, 주재소 8개소, 경부 1명, 경부서 2명, 순사부장 8명, 순사 47명
    • 소방조(의용소방대) : 일본인 16명, 조선인 33명

안성4·1독립항쟁사

  • 1919년 3월 11일 안성시장 상인들의 독립항쟁 이후 일제의 경계 강화 및 탄압으로 산발적으로 진행되던 안성시내권 4·1독립항쟁은 1919년 3월 30일 기점으로 대규모 항쟁으로 발전하게 된다.
  • 3월 30일 읍내면 장기리 안성 시장 부근에서 3백여 명의 주민이 독립만세를 외치기 시작했고 이 소식을 들은 읍내면 일대 주민들이 합세하면서 독립항쟁 참여 주민 수는 1천여 명에 달하게 된다. 이들은 당시 일제침략기구로 주민을 탄압하던 안성경찰서로 몰려가 돌을 던지며 실력독립항쟁을 이어갔으며 읍내면사무소를 파괴하고 안성군청으로 이동하여 심야까지 독립만세를 외치고 당시 안성군수에게 독립만세를 부를 것을 요구했다. 총칼로 무장한 안성경찰서에 투석하고 공격했다는 것은 당시 읍내지역 실력 독립항쟁이 얼마나 규모 있고 치열하게 전개됐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예이다.

역사 속
'이 달의 안성'

안성복음회 주최 교회 간 친목 모임 | 김태영이라는 인물이 1920년 9월, 동양선교회 안성복음회가 주최한 교회 간 친목 모임을 주선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친목이 아닌, 민족 교육에 기반한 근대 계몽 운동의 일환이었다고 해요. 당시 안성에서는 청년야학회 설립, 문맹 퇴치 운동, 운동회 개최 등 다양한 형태의 교육 · 사회운동이 활발히 전개 중이었고, 김태영의 노력은 이를 촉진하는 핵심적 역할을 했습니다.


역사와 추억이 살아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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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문화원 17596) 경기도 안성시 강변남로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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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안성'

안성복음회 주최 교회 간 친목 모임 | 김태영이라는 인물이 1920년 9월, 동양선교회 안성복음회가 주최한 교회 간 친목 모임을 주선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친목이 아닌, 민족 교육에 기반한 근대 계몽 운동의 일환이었다고 해요. 당시 안성에서는 청년야학회 설립, 문맹 퇴치 운동, 운동회 개최 등 다양한 형태의 교육 · 사회운동이 활발히 전개 중이었고, 김태영의 노력은 이를 촉진하는 핵심적 역할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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